도면 치던 변호사의 이야기

건축사 · 2023. 6. 6.

졸업 포트폴리오 중 가장 애정하는 스프레드 페이지. 아직도 이 모형 사진을 볼 때면 아련해집니다.

그 시절에도 미학적 고민보다는 건축적 기능과 스페이스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제가 멋진 건축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건축사사무소를 평생 운영하셨고 저도 어릴 적부터 청사진 냄새를 맡으며 자랐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시기가 되어서는 당연하게도 별다른 고민 없이 건축학과를 선택하였습니다. 학부에서도 긴 시간 동안 설계 스튜디오에서 고생하며 ‘건축 때려치운다’는 푸념을 셀 수 없이 내뱉었던 기억이 나지만, 모두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설계실에서 숱하게 밤샘 작업을 하고 눈을 비비며 아침을 맞이하였지요.

아직도 가끔씩 ‘계속 설계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는 합니다. 이 곳을 찾아 주신 여러분들 중 건축학을 전공하신 분이 계시다면, 현재까지도 건축가로 활동하고 계시거나 건축에 깊이 빠지셨던 경험을 한 번 쯤은 가지고 계시겠지요. 설계는 그만큼 재미가 있습니다. 설계를 하다 보면, 깊은 새벽 어딘가에서 문득 현실을 벗어나 무아지경에 들어서는 강렬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한때 수많은 밤을 지새우던 잠실역 삼성생명 빌딩은 이제 설계사무소가 있었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 무척 아쉽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법무조직을 관리하는 지금까지도, 설계를 안 하고 있다는 실감은 잘 나지 않습니다.

저는 왜 설계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을까요. 설계판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은 꼭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때마다 하는 대답처럼 ‘설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밥벌이가 안될 것 같아서’ ‘설계가 너무 어려워서’같은 것들이 진짜 이유일까요? 사실은 아닙니다.

일종의 만화적인 의협심이라고 할까요. 제가 가진 소명의식에 관하여 앞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 보려 합니다.

“When you can do the things that I can, but you don’t, and then the bad things happen, they happen because of you.”

피터 파커(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2016

2023.06.06.

변호사 이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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