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의 저작권에 관한 짧은 이야기(4)
그렇다면, 저작권에 관하여 설계용역계약에서는 어떻게 정하는 것이 설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길일까요. 항상 그렇듯이 모든 상황에 완벽히 합치될 정답이란 것은 없습니다. 언제나 표준계약서의 내용이 구체적 상황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듯, 모든 법률관계는 구체적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지요. 이 글에서는 앞서 설명드린 기본적인 법리에 비추어 설계자로서 제안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저작권에 관하여 계약에서 별도로 정하지 않는 한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야 합니다. 만약 설계용역계약에 별도의 저작권에 관한 조항이 없다면 당연히 설계자인 저작자는 설계도서에 관한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보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포괄적인 저작권 일체는 당연히 저작물을 창작한 때로부터 발생하고, 어떠한 절차나 형식의 이행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저작권법 제10조 참조). 여러분이 계약서에서 굳이 ‘모든 성과품의 저작권’이 설계자에게 귀속된다고 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술하였던 것과 같이, 설계용역계약의 일반적 목적과 내용에 비추어 보아 설계도서를 납품받은 발주자는 (저작재산권을 따로 양도받지 아니한 경우라고 하더라도)설계도서에 관하여 일정한 범위의 사용권한을 부여받게 됩니다. 여기에서 ‘일정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설계용역비 기타 여러 가지 사정이 원인이 되어, A로부터 기본설계도서까지 납품받은 발주자가 몰래 타 설계자 B를 선정한 뒤 기본설계도서를 제공하여 B로 하여금 실시설계를 진행하도록 하는 것은 사용허락의 범위 내일까요?
물론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과품의 창작성 및 유사성 등 여러 가지 정황과 증거에 따라 달리 판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해석상 불명확한 부분에 관해서는 계약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지요. 초기계약의 내용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작권 외에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에 관해서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설계용역계약에서 저작권의 귀속과 사용권한에 관하여 정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저는 아래와 같은 사항을 포함하여 계약을 체결할 것을 권고하는 편입니다.
- 소유권은 발주자가 가지며 저작권은 설계자가 가짐
- 발주자는 설계용역계약의 목적범위 내에서 설계도서를 이용할 수 있음
- 발주자는 설계자의 사전 동의 없이 설계도서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변경할 수 없음
계약서 문구는 당사자가 정하기 나름이지만 위 내용을 포함하신다면 형평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됩니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저작권은 저작과 동시에 발생되어 저작자에게 귀속된다.
- 저작권은 소유권과 분리된 권리로서 저작물의 사용을 위하여는 소유권 외의 별도 사용허락을 득하여야 한다.
- 저작권을 양도한다고 하더라도 저작인격권은 양도될 수 없다.
저작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에 법률이 정한 여러 가지 구제방법이 있고 이에 관하여도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당사자가 처한 상황에 적절한 법률적 대응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매 상황마다 구체적 사실관계를 면밀히 분석하여야 합니다. 이 글은 설계자의 저작권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분쟁이 임박하였거나 이미 발생한 상황이라면,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반드시 받으시어 억울함 없이 문제를 해결하시기를 바랍니다.
2023.06.10.
변호사 이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