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학문』 中

학자 · 2023. 12. 20.

“개인이 학문영역에서 진실로 아주 완전한 것을 성취하였다는 확실한 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장 철저한 전문화를 하였을 경우 뿐입니다. … 인접 영역에 침범하는 모든 연구는 기껏하여야 그 인접영역의 전문가에게 그의 전문적인 관점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유용한 문제제기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리고 우리 자신의 연구도 불가피하게 극도로 불완전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념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번에 나는 오래 갈 무엇인가를 성취하였다는 만족감을 실제로 인생에서 아마도 두 번 다시 없이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엄격한 전문화를 통해서뿐입니다. … 그러므로 말하자면 가죽 눈가리개를 일단 끼고서 이 친필 원고의 이 구절에 대하여 이러한, 바로 이러한 판독을 올바르게 하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빠져들 능력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학문을 멀리하십시오. 그런 사람은 사람들이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부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과는 무관한 모든 사람들로부터는 비웃음을 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정열, 그리고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하는 것을 보는 데에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수천 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고,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저 확신이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다른 일을 하십시오. 왜냐하면 정열을 가지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학문적인 영감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우리들에게 숨겨진 운명에 달려 있습니다만, ‘천부적인 재능’에도 달려 있습니다. 이 의심할 바 없는 진리 때문은 아닙니다만, 매우 통속적인 생각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아주 명백할 정도로 몇몇 우상을 떠받들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우상들에 대한 숭배가 모든 길모퉁이와 모든 잡지에서 널리 행하여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우상들이란 ‘인격’과 ‘체험’입니다. 이 둘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체험이 인격을 만들어내고 또 인격의 일부분이라는 관념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체험하기 위하여 애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격을 지닌 사람에게 어울리는 생활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체험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적어도 은총의 선물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여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체험’을 ‘감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격’이 무엇이고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하여는 예전 사람들이 더 적절한 생각을 지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략)

존경하는 참석자 여러분! 학문영역에서는 일에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만이 ‘인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학문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위대한 예술가라면, 그는 자기 일에, 오로지 자기 일에만 헌신하는 것 이외에는 결코 다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자신이 헌신하여야 할 일에는 그 지휘자로서 무대에 나타나는 사람, 체험을 통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 어떻게 하면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사람, 이런 사람은 결코 ‘인격’을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이러한 행동은 오늘날 대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어디에서나 그 결과는 보잘것없고, 또 그렇게 묻는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 대신 임무에, 오직 임무에만 내적으로 몰두하는 것은 그를 그 자신이 헌신한다고 주장하는 일의 절정에 오르게 하고, 또 그 일의 가치와 함께 그 자신을 드높여줍니다.”

막스 베버(이상률 역), 직업으로서의 학문(문예출판사, 2009), 20-21면, 24-26면.

이종혁, 논문, 이렇게 쓸 것인가? 연구윤리 특강(2023.12.16) 중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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