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계를 하는가(5)_신뢰보호의 원칙

건축사 · 2024. 1. 1.

출처 링크 :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218060&menuNo=200018

이번 글은 건축설계 필드 자체와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만, 업계 전체를 뒤흔든 이슈라면 생각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겠지요. 어찌 보면 인허가 리스크 관리도 건축사 여러분의 주된 업무이기는 합니다. 작년의 마지막 날이 넘어가기 전에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주제였습니다만, 혹독한 2023년을 겪고 있던 제게는 그 정도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새해에는 이전보다는 더 유익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만큼 여유가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글은 장릉 검단신도시 아파트에 관한 내용입니다. 벌써 한참 된 일입니다만, ‘장릉뷰 아파트’에 관한 떠들썩한 이슈가 있었던 것을 많이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김포 장릉 검단신도시 일부 아파트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건축 중이라는 이유로 공사중지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해당 아파트의 이해관계인들(주로 시공자들이었습니다)이 공사중지명령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지요. 법원이 일단 본안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공사중지명령의 효력을 정지하였던 사실까지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 사건 아파트들은 효력정지 기간 중 공사가 완료되어 이미 수분양자의 입주까지 완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며칠 전인**2023.12.28. 대법원이 공사중지명령을 취소한 원심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지었습니다.**이 글에서 효력정지 사건을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본안에서 공사중지명령을 취소한 사유를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실질적으로는 제1심에서 공사중지명령을 취소한 이유를 자세히 설시하였고 항소심은 이를 보충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상고심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었으므로 더 살펴볼 것은 없겠지요. 이 글에서 살펴볼 판결들은 아래 목록과 같습니다.


- 제1심 서울행정법원 2022.7.8. 선고 2021구합73386

- 제2심 서울고등법원 2023.9.7. 선고 2022누53824

- 제3심 대법원 2023.12.28. 결정 2023두55672(심리불속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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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2022. 7. 8. 선고 2021구합73386 판결 [공사중지명령처분취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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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2023. 9. 7. 선고 2022누53824 판결 [공사중지명령처분취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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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제1차 공사중지명령의 경위]

사업시행자는 인천 서구청에서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주택건설사업을 진행하던 중, 이 사건 문화재(김포 장릉)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이 이 사건 토지(사업부지)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 해당하고,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사중지명령을 발급하였다.

[이 사건 제2차 공사중지명령의 경위]

법원에서 선행 처분의 효력정지결정이 내려지자 문화재청은 직권으로 제1차 처분을 취소하고, 같은 날 처분사유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범위를 축소한 뒤 행정절차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하여 재차 공사중지명령(처분)을 발급하였다.

[취소소송 본안의 쟁점]

  • 이 사건 사업부지(토지)가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 해당하는지 여부
  • 문화재보호법 제35조의 허가를 받을 의무가 발생하는지 여부
  •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인지 여부
  •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법원의 판단]


  1. 관련 규정

문화재보호법 제35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대통령령을 통하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하는 해당 국가지정문화재의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건축물 또는 시설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 제13조에 따르면, 시도지사가 문화재청장과 협업하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조례로 정하고, 그 범위는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500미터 안으로 정하거나 일정 경우에 500미터를 초과할 수 있다. 문화재청장 또는 시도지사는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의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 고시하여야 한다. 이 사건 토지에 적용되는 경기도 조례는 주거지역의 경우 문화재 외곽경계로부터 200미터 이내의 지역으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를 지정하였다.

2. 이 사건 토지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 해당하는지 여부


  • 일단, 이 사건 토지는 문화재 외곽경계로부터 200미터 밖에 위치한 제3종일반주거지역에 해당하므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 법령의 해석은 어디까지나 법적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찾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20212.10.11. 선고 2010두7604판결 등 참조).
  • 여러 가지 현출된 자료에 비추어 보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 기준은 문화재 소재지가 아닌, 위 보존지역의 설정으로 제한을 받을 토지의 용도를 기준으로 해석해야 목적에 부합하는 해석인 것이다.
  • 어떤 규정의 문언상 의미를 넘어 합리적 이유 없이 행정처분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한다면 허용될 수 없다.
  • 문화재청은 경기도 조례에서 ‘영향을 검토하여야 한다’는 등의 기재가 위 보존지역을 확대하도록 한 규정이라고 주장하나, 개정 취지나 기타 자료에 비추어 보더라도 명시적인 표현 없이 피고가 언급하는 규정의 기재내용 등 만으로는 위 규정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을 확대하는 규정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3. 이 사건 아파트가 문화재보호법 제35조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이 사건 토지가 문화재보호법 및 경기도 조례에서 정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고시에 의하여 이 사건 토지가 새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해당하게 된다거나 이 사건 공사에 문화재보호법 제35조에 따른 허가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4. 이 사건 아파트 건축이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인지


  • 매장주체(장릉)의 관점인 봉분 앞 혼유석에서 바라볼 때 나무들 위로 이 사건 처분 대상 건축물을 비롯한 여러 아파트들의 상층부가 보이며, 이로써 안산을 넘어 멀리 조산에 해당하는 계양산 방면의 조망이 가려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도 ‘전면 안산에 해당하는 곳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 조망경관을 훼손하고 있다’고 이미 기재되어, 세계유산 등재신청 당시에도 이미 건축물 등으로 안산의 조망이 훼손되었고, 조망경관이 완치 않다는 사실이 이미 고려되어 있었다.****
  •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에 안산과 조산의 조망에 관하여 설명되어 있기는 하나, 그것 자체로 어떠한 규범적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이미 등재신청 당시 능침에서의 조산 조망이 훼손되어 있었던 점 등까지 고려하면,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에 능침에서의 조산 조망 가능 여부가 주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고 보기 어렵다.
  • 문화재청의 제안대로 현 시점(제1심 심리)에서 이 사건 처분대상 건축물의 상층부를 상당히 철거하더라도 여전히 다른 건축물들에 가려져 계양산 극히 일부만이 보일 뿐이어서, 조망 상태가 이사건 공사 이전 시점과 유사하게 개선될 수는 없다.
  • 이 사건 처분대상 건축물에 관한 공사의 진행이 그 자체로서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경관의 파괴라고 보기 어렵다.

5. 기타


  • 앞서 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도입 취지상 문화재의 가치와 함께 국민의 재산권 행사와의 조화가 고려되어야 한다.
  • 이 사건 토지에서 건축될 건축물의 최고층수가 20층으로 예정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2014년 현상변경허가신청 당시에 기재되어 있었다.
  • 이 사건 처분은 공사 착공 뒤 2년여가 경과되어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 이 사건 처분대상 건축물의 공사 중단으로 인한 수분양자의 재산상 손해는 막대하나, 처분 대상 건축물 후면에 위치한 아파트들로 인하여 문화재의 조망 회복 가능성은 미미하다.
  • 이 사건 처분으로 침해되는 사익이 이 사건 처분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과 비교하여 결코 작지 않으므로 비례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 사건 처분은 재량권 일탈,남용의 여지가 있다.

6. 결론


  • 이 사건 공사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 이 사건 처분대상 건물만으로 문화재의 조망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므로, 문화재보호법의 ‘국가지정문화재의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건축물을 설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 문화재청의 처분은 위법하므로, 더 나아가 볼 것 없이 취소되어야 한다.

[평가]

2014년에 이미 건축물의 최고층수가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문화재청은 착공 후 2년이 지난 시점인 2021년에 이르러서야 공사중지명령이라는 극단적인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허가대상인지 여부’부터도 전혀 법원의 판단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뉴스 기사만 보고 ‘세계문화유산 보호’라는 목적으로 결집하여 사업시행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호된 비난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문화재 본체의 훼손도 아닌 문화재에서의 ‘뷰’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조선왕릉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서 삭제된다는 기사들도 지면을 도배하였는데요, 위에서 본 것과 같이 그닥 실체적 근거는 없습니다.

어쩌면 문화재청이 자신들에게 향할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자 별다른 위법이 없는 건축물을 무허가 위법 건축물이라고 비난하며 극단적 처분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세한 사실관계를 파헤칠 접근권한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신뢰보호의 원칙이란, 행정기관의 국민에 대한 언동의 존속성과 정당성에 관한 개인의 보호가치 있는 신뢰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행정법의 기본원칙입니다. 개인이 적법한 행정행위로 획득한 신뢰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고, 심지어 위법한 행정행위가 개인에게 신뢰를 부여하였다면 사안에 따라 위법한 행정행위를 믿은 개인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행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민주적 헌법질서가 근본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도, 돈도 아닌 사람의 피일 것입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여쭙기를,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식량을 충분히 쌓고 군사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니라. 자공이 또 여쭙기를, 부득이하여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사를 버려라. 자공이 다시 묻기를, 남은 둘 중 하나를 또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식량을 버려야 할 것이니, 자고로 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논어 안연편. 김학주, 논어, 서울대학교출판부(1985), 298면.


2024.01.01.

변호사 이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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