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계를 하는가(10)_건축과 부동산
연말에 좋지 않은 소식에 전 국민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하던 때로부터 벌써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또다시 새로운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 뒤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제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새 건축설계판에서 꽤나 멀어진 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력은 대한건축사협회에서 건설기술인협회로 이관이 되어 더는 대한건축사협회에 로그인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일하는 곳을 떠나면서 다시 제 경력을 대한건축사협회로 이관시키기 전까지, 대한건축사협회 활동은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건축사협회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은 조금 미루어졌지만, 설계판에 관한 애정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저는 어느 정도 설계판에 대한 강한 소명의식으로 커리어를 이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 설계쟁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축사사무소에서 오랜 시간 변호사로 일했던 것도 그러한 까닭에서였겠지요.
저희 설계쟁이들이 하는 일은 돈 되는 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희끼리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건축 설계는 그리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네가 갈아 넣는 시간만큼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큰 규모의 엔지니어링 회사로 거취를 옮긴 지금, 더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건축설계 업무를 할 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던 토목, 기계, 전기 분야의 설계용역은, 우리 생각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용적률과 건폐율이 가지는 가치는 우리 생각보다 더 위대합니다. 건축물의 가치는 연면적, 분양면적, 임대면적 등 여러 가지 어휘로 표현되는 용적률에 의해 결정됩니다. 토지의 가치 역시 그 토지에 덮어씌워진 지구단위계획, 그에 따른 건폐율과 용적률이 결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가치평가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건설사업과 부동산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져 서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건축과 부동산은 그렇지 못합니다. 서로 밀어내는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건축은 하나의 모습으로 정형화됩니다. 같은 용적에 더 많은 돈을 내야 할수록, 건축이 있어야 할 자리를 숫자들이 앗아 갑니다. 압도적으로 높은 교환가치 아래에서, 소비자는 더 많은 면적을 주문할 뿐입니다.
물론 우리 설계쟁이들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도 아름다운 설계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설계도를 3차원 공간에 실체화시키는 것은 건축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입니다. 국민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부동산의 교환가치는, 원가를 절감할 만한 곳이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습니다. 표준화와 표준설계의 위대한 명령 아래에서, 우리는 캐드 치는 노동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아주 작은 가치를 매일매일 창출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부동산, 특히 토지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건축 그 자체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가벼운 생각이니, 저 머저리는 저러고도 밥 벌어먹고 사는구나, 하고 넘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2024.12.30.
이 규 황
변호사 |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