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 실무자를 위한 기록 관리법 (3)_녹취: 몰래 녹음해도 괜찮습니까?

건축사 · 2025. 4. 22.

건축설계 실무를 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이런 순간을 맞게 됩니다.

회의 중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주장을 하거나, 전화 통화에서 압박성 발언을 들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요.

이거 녹음해둘 걸 그랬다.

실제로 많은 실무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켜두거나, 회의 도중 몰래 녹음기를 작동시키곤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음 한편엔 늘 불안감이 남습니다.

몰래 녹음해도 괜찮을까?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화의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위법이 아닙니다.

즉, 설계자가 전화 통화나 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경우라면, 상대방 몰래 그 내용을 녹음하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대법원이 이미 명확히 판단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판례와 법령을 종합하면, 자신이 당사자인 대화를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상 금지되는 ‘감청’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으로, 대화 당사자 일방이 자신이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전기통신의 감청’이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8도1237 판결

[1] 전화통화의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하는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의 ‘전기통신의 감청’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2] 골프장 운영업체가 예약전용 전화선에 녹취시스템을 설치하여 예약담당직원과 고객 간의 골프장 예약에 관한 통화내용을 녹취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위반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

대법원 2021. 8. 26. 선고 2021다236999 판결

통신비밀보호법상 ‘전기통신의 감청’의 의미 및 전화통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소극)**

이 판례들은 전화통화의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의 ‘전기통신의 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대화 당사자 일방의 동의만 받고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 감청에 해당합니다. 설계자가 참석하지 않은 회의에 몰래 녹음기를 심어두거나, 타인의 통화를 제3자가 녹음하는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소속 직원에게 이러한 행위를 지시하는 것도 역시 위법 소지가 큽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녹음한 자료를 법정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직접 녹음한 파일은 민사소송에서 증거로 인정됩니다. 실제로 많은 분쟁에서 녹취파일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 몰래 녹음한 경우라도 대화의 당사자인 경우에는 적법합니다.


한편, 위법하게 녹음된 녹취이더라도 녹취의 진정성과 내용이 분쟁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경우에는 (특히 민사소송에서는)그 증거능력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굳이 ‘불법 녹음’을 증거로 삼아야 하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회사에 불이익이 갈 수 있고, 상대방과의 관계도 회복 불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녹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녹취는 단지 “무엇을 말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을 뿐, 그것이 실무상 지시였는지, 의무였는지, 단순한 의견교환이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편집이나 왜곡 여부가 문제 될 수 있고, 발언자 신원이 분명하지 않으면 신빙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녹취는 가급적 다른 기록 수단의 보완재로 사용하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회의 직후 요약 메일(예: “2025.04.23 설계회의 주요 논의사항 정리” 등)을 보내거나, 구두 협의에 대해 문자로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서 기록은 오히려 상대방과의 신뢰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법적 방어 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정리하자면,

- 내가 대화의 당사자라면 녹음해도 된다.

- 제3자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불법이다.

- 적법하게 녹음했다면, 대부분의 경우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 가능하다.

- 그러나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작성 시점, 대화 당사자, 발언의 취지 등을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녹취는 기억을 보완해주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기억보다 강한 것은 문서이고, 녹음보다 신뢰받는 것은 일관된 기록입니다.

설계자는 도면을 통해 건축을 만들지만, 기록을 통해 자신의 판단과 책임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기억은 흐려지고, 말은 바뀌지만, 녹취는 남습니다.

그리고 법정은 언제나, 기억이 아닌 기록을 믿습니다.

2025.04.22.

이 규 황

변호사 |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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