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계를 하는가 (14)_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들어와 있는 이 건물의 평면이 처음 그려진 날이 언제였는지, 처음 계획했던 입면이 어떤 이유로 바뀌었는지, 회의에서 어떤 논쟁 끝에 창이 조금 더 커졌는지를요.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던 모니터 속 선의 굵기들이, 기성재와 시공성과 디자인 사이에서 수없이 교차된 계산들이, 결국 도면이라는 결과로만 남게 되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실,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건축가는 늘 뒤에 있습니다. 완공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 설계자는 없고, 뉴스 기사에도, 시공사 현장 간판에도 설계자의 이름은 흔히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현장을 방문한 발주처의 한마디, “생각보다 괜찮네요” 같은 말에서 그나마 작은 보람을 찾습니다. 그나마도 듣지 못한 채 프로젝트를 떠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건축설계는 결과로만 평가받는 작업입니다. “이 건물 멋지다”는 말은 들어도, “이 도면을 설계한 사람, 참 고맙다”는 말은 듣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실무자일수록 잘 압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 어떤 도면에도 이름은 남지 않고, 그 어떤 협의에도 판단의 경위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도면은 늘 최종본만 남기 때문에, 과정에서의 고민은 사라지고, 결정의 이유는 흐려집니다. 오히려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도면이 다시 열립니다. 그때는 책임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이건 누가 이렇게 설계했습니까?”라는 질문이 돌아올 때, 그 도면에 이름은 없지만 책임은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가는 그 책임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럼에도, 건축가라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립니다. 어쩌면 그 이유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일이 내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건축가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과정을 견디는 사람입니다. 수십 번의 협의와 요구, 현실과 타협, 때로는 감리자와 시공자, 발주처의 각기 다른 의견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수정되는 선 사이에서 처음의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이 조금씩 양보하길 원할 때 가장 먼저 한 발짝 물러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건축가의 태도이고, 그 태도는 대부분 보상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결국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건축은 오랜 시간 쌓이는 일입니다. 도면을 그리고, 회의를 하고, 설계를 조율하고, 시공 중간마다 현장 조건을 반영하며, 다시 도면을 수정하는 이 모든 과정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반복됩니다.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건축가의 선택은 점점 더 희미해집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보다 “그렇게밖에 안 되었다”는 식의 결과 중심 논의가 자리잡고, 건축가는 점점 더 ‘수정하고 정리하는 사람’처럼 취급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입니다. 현실의 요구 속에서도 질서를 만들고, 구조의 한계를 설계로 풀며,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끝까지 고민하는 사람, 그 사람이 건축가입니다.
설계라는 일에는 장인정신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면을 ‘제출용 문서’가 아니라, 내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내놓는 ‘작품’이라 여기는 마음. 선 하나, 치수 하나에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내가 만든 공간에 누군가가 들어설 것을 떠올리며 디테일 하나까지 손을 놓지 않는 태도. 단지 형식을 갖춘 도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은 이렇게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을 스스로 설득하며 설계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도 처음 마음을 잃지 않고 이어가는 끈기. 그것이 건축가의 장인정신입니다. 그 마음은 보이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으며, 보통은 평가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없는 도면은 결국 건축가의 도면이 아닙니다.
실무는 반복되고, 수정은 끝이 없으며, 그 중 어떤 결정은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요구 속에서 이뤄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들립니다. “이걸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 이 수고가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질문 앞에서, 건축가는 선택하게 됩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시키는 대로 그리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고민하고, 설명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내가 왜 이 도면을 이렇게 그렸는지, 그 설명을 할 수 있는가. 결국 이 도면은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잊지 않을 것인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판단의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판단은 결국 내 이름으로 도장을 찍은 도면이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는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건물이 왜 그렇게 존재해야 했는지를 묻는 사람이고, 그 질문을 끝까지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설계는,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 선을 그은 사람이, 왜 그렇게 그었는지를 알고 있다면 말입니다.
기억 속에서 잊혀지더라도, 도면 속에 남아 있는 그 손길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 저는 그것을, 건축가의 장인정신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2025.04.24.
이 규 황
변호사 | 건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