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감기에 걸렸다고 자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몸은 멀쩡한데,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문서를 들여다보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켰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고, 할 일 목록만 자꾸 늘어나게 됩니다. 며칠을 그렇게 보냅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됩니다. 내가 번아웃에 와 있구나.
우리는 늘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갑니다. 정시에 출근하고, 주어진 일을 마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책임을 지는 사람. 실수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고 조이고 밀어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몸보다 마음이 먼저 탈이 납니다. 그런데 그 탈이, 병으로도 말이 되지 않을 만큼 애매할 때, 우리는 그걸 번아웃이라 부릅니다.
번아웃(burnout)은 말 그대로 ‘다 타버린’ 상태입니다. 더는 태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고, 다시 불붙일 여력도 없는 상태. 하지만 이 증상은 겉으로 보기에 ‘열심히 살았다는 흔적’ 같기도 하기에, 오히려 자기 고백조차 쉽지 않습니다. “요즘 좀 힘들어요”라는 말조차 부끄러워 숨기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마저 속이며 버티게 됩니다.
설계를 할 때도, 변호사로 일할 때도 저는 그런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일이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일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회복이라는 말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날들. 어쩌면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번아웃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회피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너무 열심히 버틴 사람에게 오는 경고입니다. 그만하라는 사인이 아니라, 잠시 멈추라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달리면, 결국 부서지는 건 일도, 관계도 아닌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쉬는 연습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 하루는 나를 위해 썼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연습. 사소한 기쁨에 고개를 돌리고, 잠시 멈춘 자리에 햇살 한 줌이라도 받아들이는 연습. 우리는 그렇게 다시 살아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끔은 그냥 쉬고 싶었다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고, 그렇게 말해도 괜찮은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을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동시에 다정한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불타버린 자리에 다시 싹이 트는 건, 언제나 쉼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2025.08.01.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