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속 위험한 문장들 (2)] 지체상금과 손해배상, 두 번 물어내야 할까?

변호사 · 2025. 10. 3.

설계도서 납품이 늦어지면 어김없이 따라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체상금’. 계약서 속에 당연하다는 듯 들어가 있고, 발주자는 “지체상금은 손해배상의 최소한도”라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 분쟁 현장에서도 “이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두 번 물어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체상금과 손해배상, 둘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먼저 건축주의 시각에서 보겠습니다. 발주자는 지체상금을 “납품 지연에 따른 최소한의 보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설계도서 납품이 늦어져 공사가 지연되고, 결국 이 지연으로 인하여 금융비용과 영업손실이 발생하면, 지체상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지체상금과 별도로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고 싶어집니다. 즉, “지체상금은 약속된 벌금 같은 것이고, 실제 이를 초과하는 손해는 별도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반면 건축사의 입장은 다릅니다. 설계든 시공이든, 계약서에 지체상금 조항을 넣는 순간 이미 “납품(또는 공사) 지연에 따른 책임을 정액화하여 더 청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 지체상금은 손해배상을 대신하는 성격을 가지므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일한 지연에 대해 지체상금도 내고 손해배상도 내야 하는 이중 책임이 되어 불합리하다는 논리입니다.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요? 대법원은 지체상금이 예정된 손해배상의 성격을 가지므로, 같은 지연 사유에 대해 지체상금과 손해배상을 중복해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해 왔습니다. 다만, 지체상금으로 예정되지 않은 별도의 손해(예: 지연과 직접 관련 없는 하자보수 지연, 추가 공사비 부담 등)는 청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지체상금은 공기 지연에 따른 손해를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장치이지, 모든 상황을 포괄하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포인트는 “지체상금의 상한”입니다. 우리 실무에서는 계약금액의 10%를 지체상금의 상한으로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업계 관행이자 공정성의 기준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건축주 입장에서는 “10%로는 부족하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고, 건축사 입장에서는 “이 상한선이 없으면 무제한 부담”이라는 공포가 있습니다. 결국 이 10%는 당사자 간 리스크 분담의 상징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마주치는 상황은 이렇습니다. 발주자는 “지체상금은 지체상금이고, 별도로 손해도 배상하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 지연 사유라면 지체상금으로 정리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단합니다. 다만 계약서 문구가 모호하면, 해석에 따라 당사자 어느 쪽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건축주는 계약서 작성 시 “지체상금 외에 별도의 손해배상 가능 여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하고, 건축사는 “지체상금으로 손해배상이 갈음된다”는 점을 명확히 합의해 두어야 합니다. 작은 문구 차이가 이중부담을 막아주고,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합니다.

계약서를 쓰는 순간에는 지체상금 조항이 단순한 계산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도서 납품이 지연되는 순간, 그 조항은 수억 원의 무게를 갖게 됩니다. 이미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면, 내용증명으로 입장을 확실히 정리해 두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중복 배상을 막고 협상의 주도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지체상금은 단순한 ‘벌칙금’이 아니라, 손해배상과 긴밀히 연결된 제도입니다. 내 계약서의 지체상금 조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지금 한 번 점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계약 해석, 일반 자문, 내용증명 발송은 상황마다 크게 달라집니다. 전문가와 상의하면 훨씬 명확한 답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2025.10.03.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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