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문가 집단의 권위는 신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전문가라는 이름은 제도와 법률이 보장해 주지만, 그 권위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힘은 전문가의 태도에서 나옵니다. 건축사든 변호사든, 사회가 특정 집단에게만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이유는 단순한 지식의 우위 때문이 아닙니다. 국민 앞에서 그 권한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까지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사의 도장은 그 상징적인 예입니다. 도면에 날인하는 행위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이 설계의 품질과 안전에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약속은 때때로 가볍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대표 건축사가 현장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도장을 날인해 납품을 하거나, 실무자에게 모든 판단을 떠넘긴 채 매출만 확인하는 관행은 아직도 존재합니다. 겉으로는 절차를 지켰다 하더라도, 태도의 문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로 연결되고는 합니다.
국민은 전문가 집단이 보여주는 작은 태도를 통하여 집단 전체를 평가합니다. 회의 자리에서 건축사가 발주처의 질문을 성의 없이 흘려듣는 모습, 하자가 지적되었을 때 방어적으로만 대응하는 태도, 도면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책임보다 변명에 급급한 태도는 모두 집단의 신뢰를 갉아먹습니다. 태도의 오만은 기록으로 남지 않아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가장 오래 남습니다.
신뢰를 무너뜨리는 태도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무심함, “다른 누구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안일함, “내가 아니라 조직이 책임지겠지”라는 자기합리화에서 시작됩니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건축사의 도장은 더 이상 사회적인 보증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법정에서조차 “건축사가 날인했으니 믿을 수 있다”는 추정이 힘을 잃고, 전문가 집단의 권위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겸손한 태도와 성실한 자세는 집단의 권위를 두텁게 만듭니다. 도면을 설명할 때 상대방의 눈을 마주치고 끝까지 경청하는 태도, 하자가 지적되었을 때 먼저 원인을 점검하고 기록을 남기는 태도, 발주처나 시공사와의 갈등에서 사실을 직시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전문가 집단이 가진 최고의 방패입니다.
건축사의 권위는 제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권위는 하루하루의 태도에서 비롯되고, 그 태도의 연속이 곧 집단 전체의 신뢰를 형성합니다. 아무리 많은 자격과 경력이 쌓여도, 한순간의 오만한 태도는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진짜 힘은 권한보다 국민의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건축사의 도장도, 변호사의 변론도, 의사의 처방도 모두 같은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태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신뢰감이 무너지는 순간 권위는 사라집니다. 그 단순한 진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전문가로 기능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2025.10.16.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