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프로젝트 실무] ‘손해배상 청구예정’ 공문, 어디까지 써야 안전할까
함께 일하기로 했던 파트너가 돌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 실무자는 그저 결과만 통보받습니다. 수개월간의 검토와 협의, 회의록과 견적표, 설계 도서 위에 쌓인 수많은 시간은 순식간에 ‘무효’가 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쓴 시간과 비용은 누가 책임지지?”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하는 공문을 작성합니다. 하지만 이 문서, 쓰는 방식과 내용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너무 감정적인 어투를 드러내면 오히려 불리하게 활용될 가능성도 있고, 법리를 빼면 근거 없는 항의 서한 정도로 끝나 버립니다. 공문 한 장이 수천만 원의 손익을 가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검토했었던 한 민간 공사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발주자가 여러 시공사 후보에게 참여 검토를 요청했고, 한 업체가 조건부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안에는 “법적 구속력 없음” 및 “참여를 보장하지 않음”이라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었죠. 이후 수개월간 설계 검토와 공사비 협상이 진행되었고, 발주자는 이후 구체적인 추진 일정을 공유하며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사전 통보도 없이 다른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해당 업체는 결국 손해배상 청구예정 공문을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법적으로 이런 상황은 ‘계약교섭의 부당파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법원은 “상대방에게 계약이 확실히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신뢰를 부여해 비용을 지출하게 하고, 상당한 이유 없이 협상을 중단한 경우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계약체결상 과실책임’이라고도 부르죠. 다만 배상 범위는 제한적입니다. 계약이 실제로 체결되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이행이익)은 포함되지 않고, 계약이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된 이후에 지출된 비용만을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즉, 인건비나 출장비, 외부 자문료 등 준비비용이 그 대상입니다.
[체크리스트]
1. 공문 작성 시 주의할 표현
- “예상 이익 손실” 항목은 법적으로 신뢰손해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기재하지 않습니다.
- “이중거래”처럼 감정적인 표현은 피하고, “교섭 중 다른 업체를 선정한 사실” 등 객관적 서술을 사용합니다.
- “신의성실 위반”보다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신뢰손해”라는 문구가 법리에 부합합니다.
- 손해액은 항목별로 구체화합니다. 정확한 금액을 모르더라도 “Man-hour 기준 산정 예정” 등 산식이라도 명시합니다.
2. 기본 구조
- 법적 근거: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신뢰손해 배상
- 기간 구분: 신뢰가 실질적으로 형성된 시점(예: 일정표 공유일)을 기준일로 설정
- 손해 항목:
- ① 투입 인건비(설계검토, 견적, VE 등)
- ② 출장·회의 등 직접경비
- ③ 외부 자문료(법률·기술 포함)
- ④ 기타 계약체결을 신뢰하고 지출한 비용
3. 증빙 준비 항목
- 투입 인력 명단과 역할, Man-hour 및 단가 산출 근거
- 출장비·회의비 영수증 등 지출 내역
- 외부 자문 계약서 및 세금계산서
- 일정표 공유 메일, 회의록, 교섭 과정 기록
4. 손해 시점(기준일) 설정 이유
- 초기 제안·견적 단계의 비용은 일반적인 청구항목으로 인정되기 어려움
- 발주자가 구체적 일정과 절차를 공유하며 협조를 요청한 시점부터는 신뢰 형성 구간으로 평가됨
- 이 시점을 기준으로 이후의 비용만 신뢰손해로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 있음
공문은 단지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나중에 법정에서 “그때 무슨 근거로 어떤 청구를 했는가”를 증명하기 위한 문서입니다. 그래서 문장은 건조할수록 좋습니다. 대신 ‘언제, 무엇에, 왜, 얼마를 썼는가’를 구체적으로 남겨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섭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종종 서운함이지만, 그 감정을 그대로 옮기면 증거가 아닌 감정문이 됩니다. 법은 감정을 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뢰가 깨어지는 과정에서 실제로 들인 비용만큼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
공문은 그 경계를 명확히 지켜 작성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25.11.03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