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법] 빌려준 돈,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을까요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했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단순히 돈을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갚을 마음조차 없었던 것이라면 사기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 보면 ‘이건 분명히 사기다’라는 분노와 ‘그래도 고소가 가능할까’라는 불안이 뒤섞여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배신감이 앞서지만, 법은 그 감정만으로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처음부터 갚을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민사소송이 채권 회수를 위한 절차라면, 형사고소는 상대방의 ‘기망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판단의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단순히 돈을 안 갚는다고 해서 모두 사기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빌릴 의도가 있었는가’ 그리고 ‘속일 의도가 있었는가’입니다.
1. 단순한 채무불이행과 사기의 경계
민사와 형사의 가장 큰 차이는 범죄의 고의에 관한 요건입니다. 사기죄는 타인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한 경우를 말합니다. 즉, 돈을 빌릴 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사업이 실패했거나 경제사정이 어려워 갚지 못한 경우는 사기가 아니라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으로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빌릴 당시 이미 다른 채무로 사실상 파산의 상태였거나, 갚을 능력이 전혀 없는데도 허위로 수입이 있다고 속여 돈을 빌렸다면, 이는 사기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에는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지만 나중에 상황이 나빠져 갚지 못하게 된 경우라면, 법은 그것을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닌 ‘민사상 책임’으로 봅니다.
이 차이는 작지만 결정적입니다. 많은 분이 억울한 마음에 형사고소를 선택하지만, 실제로는 불기소나 무혐의로 끝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갚지 않는다’와 ‘속였다’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 법원이 보는 ‘기망의 증거’
법원은 행위자의 말보다 상황을 봅니다. 사기 여부는 결국 정황이 충분히 누적되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속일 의도가 있었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돈을 빌리며 허위의 사유를 제시한 경우 (투자, 계약금, 병원비 등)
- 돈을 받은 직후 잠적하거나 연락을 끊은 경우
- 돈을 받은 직후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 처음부터 변제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서 반복적으로 차용한 경우
반면 단순히 갚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사기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법은 거짓말과 실패한 약속을 구별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상해도, 기망이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은 어렵습니다.
3. 형사고소의 목적은 복수보다는 채권의 회수입니다
형사절차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사기죄 고소는 단순히 상대를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협상의 압박을 통한 회수 가능성 확보라는 실질적 목적을 함께 가집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면, 대부분은 합의를 통해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변호인의 역할은 감정이 아닌 전략입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상대가 방어적으로 굳어지고, 사건은 장기화됩니다.
형사고소는 복수가 아니라 수단입니다. 실제로는 ‘형사’보다 ‘민사’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고소는 그 민사 절차를 뒷받침하는 압박 카드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고소로 인해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만큼, 신중해야 하고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4. 사기죄 고소의 현실적인 절차
형사고소는 경찰서나 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고소장에는 다음의 내용이 명확히 포함되어야 합니다.
- 빌려준 시점, 금액, 계좌정보, 대화기록 등 사실관계
- 상대방이 어떤 말을 했고, 그 말이 왜 거짓이었는지
- 갚지 않은 이후의 행적 (잠적, 연락두절 등)
이때 단순히 ‘갚지 않았다’는 진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처음부터 속였다는 정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합니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기망 의도 입증이 불명확한 사건의 대부분을 ‘민사상 다툼’으로 종결합니다. 따라서 고소장 작성 단계부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수사기관이 이해하기 쉽게 구조화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효과적이겠지요.
5.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싸워야 합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의 분노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형사절차는, 특히 감정보다는 증거의 게임입니다. 억울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토로하면 할수록, 사건의 초점이 흐려집니다. 반대로 냉정하게 정리된 문장과 구체적인 정황이 있을 때, 수사기관이 움직일 것입니다. 사기죄 고소는 처벌을 요구하는 절차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사건의 구조를 가장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민사와 형사의 경계가 선명해지고, 어떤 선택이 현실적인지도 보이게 됩니다.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어떤 약속 위에서 오갔는가에 관한 입증자료입니다. 약속이 깨졌다면 감정으로 싸우지 말고 기록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감정은 불타오르지만, 증거는 남습니다. 그리고 결국, 법원은 그 증거 위에서만 정의를 바로세우려 할 것입니다.
2025.12.23.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