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치며

수필 · 2025. 12. 30.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서류철이 몇 겹씩 쌓여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이름과 숫자, 그리고 사연이 함께 묻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건 분쟁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일 중 하나였겠지만, 제 눈에는 모두 한 사람의 크나큰 흔적이자 관계의 기록으로 남습니다. 법률가의 일은 결국 기록을 다루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문장으로 바꾸고, 그 문장이 증거가 되어 세상을 움직이게 만드는 일. 한 해를 돌아보면, 저는 그 기록의 세계 속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올해에 여러 가지 글들을 쓰면서 다시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법은 결코 차가운 언어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다루는 문장과 증거, 절차의 이면에는 늘 감정이 있습니다. 억울함, 분노, 후회, 그리고 미련. 그것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때로는 분쟁을 낳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도 기록으로 정리되는 순간부터는 법의 언어로 번역됩니다. 감정이 증거로, 대화가 문장으로, 관계가 계약으로 바뀌는 과정이 바로 법의 세계입니다.

이 연재에서 다룬 주제들은 모두 인간관계의 끝자락에 놓여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빌려준 돈, 선의로 돕다 빚이 된 관계, 되돌아오지 않는 약속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묶어 주는 공통된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기록’입니다. 감정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고, 그 기록이야말로 법이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법을 공부하고 일하면서 늘 감정과 기록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감정만으로는 설득할 수 없고, 기록만으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내내 두 세계의 사이에서 글을 썼습니다. 기록의 언어로 감정을 번역하려 했고, 감정의 언어로 기록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법의 자리, 그리고 사람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한 해의 끝에 이 글을 마치며, 다시 한 번 이렇게 정리해 봅니다.

법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남기는 기술이고, 기록은 그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붙잡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감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되 기록으로 말하는 방법입니다.

새해에는 또 다른 기록이 시작되겠지요. 그 기록이 조금은 덜 아프고, 조금은 더 단단하길 바랍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결국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감정은 지나가도 기록은 남고, 기록 속의 진심은 언젠가 누군가의 권리가 됩니다.

2025.12.30.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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