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애니메이션과 인스턴트 쾌락에 관한 소고

수필 · 2024. 12. 31.

넷플릭스에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이 추천 작품으로 올라와서, 연말 휴무에 세 편을 내리 감상하였습니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동전사 건담 프랜차이즈에 미쳐서 벽면 전체를 덮는 장식장에 프라모델을 가득 채우기도 했습니다.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인이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시간도 공간도 부족하게 되어, 이제는 머나먼 추억 속에 잠들어 버린 아무로 레이와 샤아 아즈나불. 그때 그 시절에 나의 마음을 빼앗았던 애니메이션의 전개는, 지금의 미디어가 주는 재미와는 다른 전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탐닉하던 애니메이션들은 이제 자연스레 고전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 꽤나 어렵게 구해서 감상했던 기동전사 건담의 전개 방식은, 너무도 쉽게 몇 번의 터치만으로 우리에게 제공되는 대부분의 현대 영상물들과는 사뭇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너무 답답해서, ‘고구마 전개’만 이어져서 대부분의 시청자가 중도 하차하게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소년 아무로 레이는 답답합니다. 당대 로봇 만화의 주인공 치고는 너무나도 어둡고 불안한 내면세계의 묘사, 그리고 작중의 답답한 행보 때문에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다소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극이 진행되며 아무로는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갈등하며, 자기의 여러 가지 약점들을 극복해 나갑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뉴타입’이라는 재능을 발현시키며 극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아직도 제 가슴에 큰 울림을 줍니다. 제가 지금까지 달려오게 한 만화적인 의협심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로봇 애니메이션에서의 파일럿은 그저 용기와 희망으로 가득찬 도구와 같아 메카닉의 멋짐을 보조하는 부속품에 가까웠다면, 기동전사 건담에서의 모빌 슈트들은 파일럿의 심경을 대변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로는 그 나이에 맞게, 내면이 너무나도 불안한 소년입니다. 이 소년의 성장은 기동전사 건담을 넘어 Z건담, 역습의 샤아까지 계속됩니다. 손쉽게 무너지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아무로의 모습에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나도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갈등하며 강한 전사로 성장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리고 약한 소년이었던 저는 다소간의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회귀물 또는 빈센조, 도깨비, 존 윅, 이퀄라이저, 테이큰과 같이 ‘초인적 존재’들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이다’물 등.. 요즈음의 우리가 좋아하는 영상물은 조그마한 역경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고구마 주인공이 선사하는 답답한 시간들을 견뎌 낼 인내심이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역경의 순간들, 답답한 행동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지극히 부끄러운 순간들이 투영되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른바 ‘먼치킨물’의 주인공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사이다’씬을 만들어 즉각적인 쾌락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어떤 감정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네들 대부분은 존 윅에 스스로를 투영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초인적인 존재가 아무런 곤경 없이 악을 소탕하는 이야기는 당장의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줄 수는 있겠으나, 이야기가 끝난 뒤 마주해야 하는, 초인적인 해결사가 없는 현실에 더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되겠지요. 어떠한 결핍도 없는 주인공이 어떠한 어려움도 없이 선을 행하는 이야기(가끔은, 그러한 주인공이 당당히 악행을 일삼기도 합니다)에서 우리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어떠한 위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고통 없이 해결되는 문제는 없습니다. 같은 문제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장애물이 될 수 있겠으나,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역경은 충분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떠나보낼 수 있게 됩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기대하며 살아갈 수는 없겠지요. 만능 해결사는 없습니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매일매일 차례로 다가오고 있고,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뿐입니다.

불평등하고 불확실하며, 결코 선하지 않은 이 세상을 즐겁게 마주하려면 용기와 희망, 그리고 사랑이 필요합니다. 소년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지요. 불의와 악행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 삶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 곁에 있는 아끼는 사람들과 나눌 사랑은 고되고 불합리한 현실을 살아 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원동력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는 일상은 너무나도 불편합니다. 어렵고 고되고 우울합니다. 매일 눈을 뜨고 집 밖으로 나서는 우리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고, 들인 노력에 대해 보상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우리에게는 더 큰 희망이 필요하고,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할 우리에게는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이 20년 전보다 급격히 고단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긴 시간을 투자하여 답답한 전개를 견디고 끝내 찾아오는 카타르시스를 맞이하여 만화적인 의협심을 키우기에는 삶이 너무 고되어졌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그래도 가뜩이나 많지 않은 시간을 쪼개서 즐기는 문화생활에서 인스턴트 쾌락을 즐기기보다는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감정들을 키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24.12.31.

이 규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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