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 안정이라는 이름의 불안
연말이 되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만하면 괜찮게 살고 있는 걸까, 작년보다 나아진 게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찾아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정된 삶을 이야기합니다. 직장에서의 자리, 꾸준한 수입, 무리 없는 인간관계, 언뜻 보면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들 말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바깥의 조건은 안정되어 가는데, 내면은 오히려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어쩌면 그런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왔고, 눈앞의 일들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열정은 줄어들었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과, 이쯤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부딪힙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불안이 곧 에너지였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움직였고, 미래를 향한 기대가 불안을 견디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불안이 더 이상 추진력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가슴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나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감정이 되었습니다.
안정이라는 말은 듣기엔 참 편안하지만, 막상 그 안에 머물다 보면 낯선 공허감이 따라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예측 가능하고,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이상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이 희미해집니다. 변화가 없다는 건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멈춰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꿈꾸면서도, 막상 안정이 찾아오면 또 다른 갈증을 느낍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금의 삶이 정말 나를 닮은 걸까 하는 질문이 그때 찾아옵니다.
저 역시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법무팀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익숙해졌고, 건축사로서의 정체성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그 안에서 가끔 방향을 잃은 기분이 듭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건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평온한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불안은 결핍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채워졌다고 믿는 순간에 고개를 드는 감정인지도 모릅니다. 삶의 균형이 맞춰질수록 마음은 더 예민해집니다. 그 미세한 불균형이 오히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려 애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감정이야말로 나를 앞으로 조금씩 밀어주는 마지막 동력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불안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때로는 흔들리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벽한 안정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은 늘 균형과 불균형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서 사람은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연말의 공기를 마주하며, 저는 올해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따뜻함을 느낍니다. 흔들린다는 건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고, 아직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완전히 안정된 삶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숨 쉬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 불안이 제 안의 작은 등불이 되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지 않게 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5.12.19.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