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감정] 감정서가 곧 판결문이 되는 이유 — 정확한 건설감정의 중요성
건설 소송을 하다 보면, 판결문보다 먼저 도착하는 ‘판결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감정서입니다. 두툼한 감정서가 법원에 제출되는 날, 양쪽 대리인들은 판결 선고일 못지않게 긴장한 얼굴로 서류를 넘겨봅니다. 감정 결과가 어느 쪽으로 나왔는지에 따라, 그날로 사건의 승패가 사실상 정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단은 법관이 하는 것인데, 왜 감정인의 보고서가 판결을 좌우한다는 것일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법관은 법률 전문가이지, 콘크리트 균열의 원인이나 방수층의 시공 상태를 판단하는 기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판 실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감정 결과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운영됩니다. 일단 감정서가 제출되고 나면 이를 뒤집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자의 존부, 보수 방법, 그리고 손해액이라는 건설 소송의 핵심 쟁점 세 가지가 모두 감정인의 펜 끝에서 일차적으로 결정되는 셈입니다. 제가 감정서를 ‘판결문보다 먼저 도착하는 판결문’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감정은 얼마나 정확할까요. 유감스럽게도, 통계는 그리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 변호사들에게 건설감정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더니, 만족한다는 응답은 10퍼센트에 그쳤고 불만족은 41퍼센트에 달했습니다. 불만족의 이유로는 감정인의 능력 부족, 업무 소홀, 전문분야 불일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차례로 꼽혔습니다. 실무에서 체감하는 문제는 더 구체적입니다. 같은 건물의 같은 부분을 감정하더라도 감정인에 따라 세대당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결과가 달라진다는, 이른바 ‘고무줄 감정’에 대한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법원이 2025년부터 전국 여섯 곳 고등법원에 감정관리센터를 설치해 감정 절차를 통합 관리하기 시작했을 정도입니다. 그 전까지는 감정인에 대한 평정, 그러니까 감정을 잘했는지에 대한 사후 평가조차 전체 사건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편차가 생기는 것일까요. 감정을 둘러싼 오해 중 가장 큰 것이, 감정을 ‘측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줄자를 대면 길이가 나오듯 감정서에서 객관적인 숫자가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건설감정은 측정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판단’이 쌓인 구조물입니다. 이 균열이 하자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기준의 선택, 하자라면 어떤 공법으로 보수할 것인지의 선택, 보수 물량을 어떻게 산출할 것인지의 방식, 그리고 어떤 단가를 적용할 것인지의 결정. 단계마다 감정인의 재량이 개입하고, 그 재량이 곱해질수록 결과의 진폭은 커집니다. 감정인 개인의 자질 문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뢰인들께 감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는 합니다.
감정 전에는 감정신청 항목의 설계가 절반입니다. 무엇을 물을 것인지, 어떤 전제사실 위에서 물을 것인지를 정교하게 다듬지 않으면, 아무리 성실한 감정인을 만나도 원하는 판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질문이 틀리면 답도 틀리기 때문입니다.
감정 중에는 전제사실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감정서의 오류 중 상당수는 계산 실수가 아니라 전제의 착오에서 나옵니다. 현장 조사에 성실히 입회하고, 감정인이 어떤 자료 위에서 판단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착오를 미리 걸러낼 수 있습니다.
감정 후에는, 감정서를 결론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으로 대해야 합니다. 감정서가 도착하면 사건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손을 놓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만,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판정 기준은 적절했는지, 물량 산출에 근거가 있는지, 적용 단가는 어느 기준에서 온 것인지를 따져 보고, 필요하다면 감정보완신청과 사실조회로 다투어야 합니다. 뒤집기 어렵다는 것이 뒤집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다툼은 감정의 언어, 즉 기술의 언어로 해야 설득력을 가집니다.
건설감정은 기술과 법이 만나는 좁은 통로입니다. 그 통로를 지나는 동안 도면과 균열은 숫자가 되고, 숫자는 판결이 됩니다. 그 변환의 매 단계에 사람의 판단이 개입하는 이상, 정확한 감정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통로는 도면의 언어와 판결문의 언어가 서로를 알아듣지 못해 자주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어두운 길은, 두 언어가 모두 들리는 사람과 함께 걸을 때 조금 덜 무섭습니다. 감정서가 도착하기 전에, 가능하다면 그 통로에 들어서기 전에, 곁에서 함께 읽어 줄 사람을 찾아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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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6.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