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감정] 청구액의 절반이 된 인정액
상담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3억을 청구하면, 3억을 받게 되는 건가요?”
통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하자 관련 판결문 418건을 모아 청구액과 인정액이 모두 확인되는 291건을 집계해 보니, 인정액은 청구액의 중앙값 기준 56.4%였습니다.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지요. 3억을 청구한 사건이라면 1억 7천만 원 언저리에서 판결이 나는 것이 가장 흔한 풍경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중앙값은 개별 사건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예언은 아닙니다. 분포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흥미로운 사실이 보입니다. 청구액의 20%도 받지 못한 사건이 열에 하나(13%)를 넘고, 20%에서 40% 사이가 19%, 40%에서 60% 사이가 22%, 60%에서 80% 사이가 20%, 그리고 80% 이상을 받아 간 사건이 26%입니다. 청구액의 95% 이상, 사실상 전부를 인정받은 사건도 42건이나 됩니다. 요컨대 네 건 중 한 건은 청구의 3할도 건지지 못했고, 다른 한 건은 8할 이상을 가져갔습니다. 같은 하자소송인데 말입니다. 이 격차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판결문을 한 건씩 뜯어 보면, 청구액이 인정액이 되기까지 돈이 깎이는 관문은 크게 두 곳입니다.
첫 번째 관문은 감정입니다. 소장에 적는 청구액은 대개 감정 전의 추정치입니다. 보수업체의 견적서, 관리사무소의 조사 자료, 당사자의 짐작이 섞인 숫자이지요. 그런데 견적서와 감정서는 태생이 다릅니다. 견적서는 일감을 따려는 문서라 전면 재시공, 상급 자재를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고, 감정서는 법원에 제출하는 문서라 보수로 충분한 부위는 보수비만, 표준품셈과 시장단가를 근거로 계산합니다. 창호 전체 교체로 견적된 항목이 감정에서는 조정 시공으로, 방수층 전면 재시공이 부분 보수로 내려앉는 식입니다. 실제로 청구액과 감정액을 비교할 수 있었던 184건에서 감정액은 청구액의 중앙값 기준 82.7%였고, 열에 여섯 사건(64%)에서 감정액이 청구액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소송의 첫 번째 절삭은 법정의 공방이 아니라 감정인의 계산기 위에서 일어나는 셈입니다.
두 번째 관문은 판결입니다. 감정액이 그대로 인정액이 되지도 않습니다. 감정액과 인정액을 비교할 수 있었던 201건에서, 인정액은 감정액의 중앙값 기준 78.7%였습니다. 여기서 깎이는 이유는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항목별 다툼입니다. 감정서에 올라간 항목이라도 법원이 하자가 아니라고 보거나, 제척기간이 지났다고 보거나, 입증이 부족하다고 보면 그 항목은 지워집니다. 다른 하나는 책임제한입니다. 판결문 말미에 “공평의 원칙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책임을 70%로 제한한다”는 한 문장이 붙으면서 남은 금액의 30%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제 데이터베이스에서 책임제한이 확인된 사건은 189건, 그 중앙값이 바로 70%입니다. 이 이야기는 분량이 만만치 않아 따로 한 편으로 다뤄 보겠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청구액은 감정이라는 관문에서 한 번, 판결이라는 관문에서 또 한 번 깎입니다. 두 번의 절삭을 거치면 대략 절반이 남습니다. 중앙값 56.4%라는 숫자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그래도 일단 크게 불러 놓는 것이 유리하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과다 청구는 공짜가 아닙니다. 인지대는 청구액에 비례해서 먼저 나가고, 소송비용은 패소한 비율만큼 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청구의 절반만 인정되면 상대방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비용의 상당 부분을 이쪽이 무는 결과가 되지요. 3억을 불러 1억 5천을 받는 것과, 1억 8천을 청구해 1억 5천을 받는 것은 판결 금액이 같아도 정산서가 다릅니다. 청구액은 기세로 정하는 숫자가 아니라 설계로 정하는 숫자입니다.
그렇다면 80% 이상을 받아 간 4분의 1은 운이 좋았던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판결문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처음부터 감정으로 확인 가능한 항목을 중심으로 청구를 설계한 사건, 감정신청 단계에서 감정 항목을 빠짐없이 특정한 사건, 감정 결과가 나온 뒤에도 사실조회와 감정보완으로 숫자를 다듬은 사건들이 위쪽 분포에 모여 있습니다. 반대로 견적서 하나로 큰 금액을 부른 뒤 감정에서 절반이 꺾이고, 감정에 올리지 못한 항목이 입증 부족으로 전멸한 사건들이 아래쪽에 쌓입니다. 청구액과 인정액의 격차는 상당 부분 소장을 쓰기 전에, 그리고 감정신청서를 쓰는 단계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장을 쓰기 전의 준비를 소송의 절반이라고 말씀드리고는 합니다. 하자 부위를 방마다, 공종마다 목록으로 만들고, 발견 시점과 경과를 사진과 날짜로 남기고, 이미 보수한 부분이 있다면 그 내역과 영수증을 정리해 두는 일. 그리고 그 목록을 감정이 가능한 언어, 즉 어느 부위가 설계도서와 다르게 시공되었고 어떤 기준에 미달하는지의 형태로 번역해 보는 일입니다. 이 번역이 되어 있는 사건은 청구액부터가 감정액과 크게 어긋나지 않게 설계되고, 감정신청서도 빠짐없이 짜입니다. 반대로 이 준비 없이 견적서의 합계액만 들고 출발한 사건은, 위에서 본 두 관문에서 예외 없이 대가를 치릅니다.
이 통계의 한계도 말씀드려야 공정하겠지요. 공개된 판결문 가운데 금액이 추출 가능한 사건만 담겼으니 표본에는 편향이 있을 수 있고, 아파트 집합건물 소송과 단독주택 소송, 신축 2년 차와 준공 10년 차 건물의 사정이 같을 리 없습니다. 중앙값 56.4%는 지도의 축척 같은 것이지, 내 사건의 좌표가 아닙니다. 다만 지도조차 없이 떠나는 소송과 축척이라도 알고 떠나는 소송의 차이는, 3년 가까이 걸리기도 하는 이 여정에서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의뢰인 입장에서 실감이 나도록 바꿔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하자소송에서 돈은 두 번 환전됩니다. 청구액이라는 통화는 감정소에서 한 번, 법정에서 한 번 환율을 적용받습니다. 여행지에서 환전을 해 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같은 돈을 들고 가도 어디에서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손에 쥐는 금액이 달라진다는 것을요. 그리고 환율표를 읽을 줄 아는 사람과 함께 서 있는 창구에서는, 이상하게도 수수료가 덜 나가고는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환전이 극적으로 벌어진 실제 재판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같은 집을 두고 첫 번째 감정은 971만 원, 두 번째 감정은 4,723만 원이 나온 사건입니다.
2026.08.11.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