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감정] 971만 원이 4,723만 원이 된 재판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자 부부는 건축업을 했고, 스승은 그들에게 수도권의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단독주택 신축을 맡겼습니다. 공사대금 4억 1,800만 원. 사제 간의 신뢰로 시작한 공사였고, 실제로 집은 예정대로 완공되어 준공검사까지 마쳤습니다. 그러나 준공 후 집 곳곳에서 문제가 나타났고, 하자를 보수해 주겠다는 서약서까지 오간 뒤에도 갈등은 봉합되지 않아, 두 사람은 결국 법정에서 본소와 반소로 마주 서게 되었습니다. 제 판결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한 항소심 판결의 이야기입니다.
건축주는 하자를 주장하며 법원에 감정을 신청했습니다. 첫 번째 감정인이 계산한 하자보수비는 9,716,029원이었습니다. 4억이 넘는 공사에서 하자보수비가 천만 원이 안 된다는 결과였지요. 골조를 다시 세우자는 것도 아니고, 집을 비워야 할 만큼 심각하다고 느껴 온 건축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숫자였을 겁니다.
건축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재감정을 신청했습니다. 이번에는 감정 항목을 대폭 추가하고 다듬었습니다. 첫 감정에서 다뤄지지 않은 부위들을 목록에 올렸고, 감정 전에 자비로 먼저 보수한 내역까지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두 번째 감정인이 내놓은 숫자는 47,232,536원. 첫 번째 감정의 4.9배였습니다.
같은 집입니다. 그 사이에 하자가 다섯 배로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두 숫자는 이렇게 벌어졌을까요.
첫 번째 감정인이 무능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판결문이 짚은 이유는 담백합니다. 두 번째 감정은 신청한 감정 항목이 첫 번째보다 많았고, 첫 감정과 겹치지 않는 부분이 상당했으며, 선보수 내역의 검토는 두 번째 감정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감정인은 물어본 것에 답하는 사람입니다. 감정신청서에 올리지 않은 항목은 아무리 실재하는 하자라도 감정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숫자와 두 번째 숫자의 차이는 감정인의 실력 차이가 아니라, 감정신청서 자체의 차이였던 셈입니다.
법원은 두 번째 감정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에는 확립된 법리가 있습니다.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감정 방법이 경험칙에 반하거나 합리성이 없는 등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존중되어야 하고, 일부에 오류가 있더라도 전체가 모순되거나 불명료하지 않은 이상 그 일부만 배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2. 1. 12. 선고 2009다84608 등 판결). 실제로 제가 하자 판결 418건에서 감정 채택 여부가 판별되는 385건을 집계해 보니, 법원이 감정 결과를 받아들인 비율은 96.1%였습니다. 법원은 감정을 거의 뒤집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정 결과가 불리하게 나온 뒤에 최종 변론으로 뒤집어 보겠다는 계획은 통계적으로 승산이 희박한 싸움입니다. 이 사건의 건축주가 택한 길, 즉 감정 절차 안에서 재감정 신청과 감정인에 대한 사실조회로 다시 싸우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통로입니다. 덧붙이자면 재감정이 언제나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는 첫 감정에 빠진 항목이 많다는 구체적인 사정, 즉 재감정을 해야 할 이유가 기록으로 서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정 공방은 감정서가 도착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항소심에 올라가서도 감정인에 대한 사실조회로 개별 항목의 산정 근거를 확인받았고, 법원은 그 회신까지 증거로 삼아 항목별 판단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감정서를 받아 든 순간부터 판결 선고까지, 숫자는 계속 다듬어지는 중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반대쪽 사례도 있습니다. 제 데이터베이스의 다른 판결에서는, 소송 밖에서 당사자 일방이 의뢰한 이른바 사감정 보고서가 법정에서 배척당했습니다. 법원의 감독도, 상대방이 절차에 참여할 기회도 없었고, 감정액 산정 근거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으며, 경미한 하자에까지 철거 후 재시공 비용을 매기고 항목이 중복 산정되었다는 이유였습니다. 법원이 신뢰하는 것은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숫자가 만들어진 절차입니다. 절차 밖에서 만든 숫자는 아무리 크더라도 무게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감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소송 전 협상 단계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자료로 쓰거나, 법원 감정의 오류를 짚어 사실조회의 근거로 삼는 등 제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법원 감정을 대체하겠다고 내밀는 순간 보고서는 그 자체의 무게를 잃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법원이 4,723만 원의 감정을 채택했다고 해서 건축주가 4,723만 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항목별로 다시 다툼이 벌어졌고, 법원은 다툼 없는 부분 836만 원에 다툼 끝에 인정한 2,257만 원을 더해 최종적으로 3,093만 원을 하자보수 손해로 인정했습니다. 감정액의 65% 수준입니다. 그리고 감정 위에 올리지 못한 청구, 예컨대 보수 기간 동안의 이사비용과 임시거처 비용 1,850만 원은 그 필요성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부 기각되었습니다. 감정이라는 저울에 오른 항목은 깎이더라도 살아남았지만, 저울에 오르지 못한 항목은 전멸한 것입니다.
한 가지 반전이 더 남아 있습니다. 이 소송에는 반소가 있었습니다. 시공자 부부는 정산되지 않은 추가 공사대금이 있다며 맞소송을 냈고, 법원은 그중 2,000만 원을 인정했습니다. 건축주가 하자로 받아낸 3,093만 원에서 내어 줄 2,000만 원을 빼면, 몇 년의 소송 끝에 남는 차액은 1,093만 원입니다. 공교롭게도 첫 번째 감정이 내놓았던 971만 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숫자이지요. 소송이라는 저울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는 일이 잘 없습니다. 하자를 다투러 들어간 법정에서 미지급 공사대금이 함께 계량되는 일은 건설소송의 일상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양쪽 접시에 무엇이 올라갈지를 모두 셈해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재판을 요약하면 세 문장이 됩니다. 감정은 물어본 것에만 답한다. 법원은 감정을 거의 따른다. 그러므로 하자소송의 승부는 법정의 화려한 변론이 아니라, 감정신청서에 어떤 항목을 어떤 순서로 올릴지 정하는 조용한 책상 위에서 대부분 결정된다.
저울 자체는 이 사건에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저울은 올려놓은 것만 달아 줍니다. 무엇을 올리고 무엇을 빼놓았는지에 따라 971만 원과 4,723만 원 사이의 어디쯤이 그 사건의 운명이 됩니다. 그래서 저울 앞에 설 때는, 저울에 무엇을 올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과 함께 서는 것이 저울을 탓하는 것보다 언제나 빠릅니다.
2026.08.13.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