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분쟁] 책임제한 70% — 30%는 어디로 사라지는가
하자소송 판결문을 끝까지 읽어 본 분이라면, 마지막 즈음에서 반드시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공평의 원칙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피고들의 손해배상액을 위에서 인정한 금액의 70%로 제한함이 타당하다.”
몇 달에 걸친 감정으로 하자보수비가 확정되고, 항목마다 치열하게 다투어 살아남은 금액이 있는데, 판결문의 이 한 문장으로 그 30%가 사라집니다. 앞선 두 글에서 청구액이 감정에서 한 번, 판결에서 또 한 번 깎인다고 말씀드렸는데, 두 번째 절삭의 가장 큰 칼날이 바로 이 책임제한입니다.
이 문장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등장할까요. 제가 살펴본 하자 판결 418건 가운데 책임제한 비율이 확인되는 사건은 189건입니다. 그 중앙값은 70%. 가장 흔한 비율도 70%로 50건이었고, 80%가 46건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넷 중 하나는 63% 아래로 내려갔고, 절반까지 깎인 사건이 11건, 심지어 40%로 제한된 사건도 6건 있습니다. 거칠게 말씀드리면, 하자소송에서 감정으로 살아남은 금액의 2할에서 3할은 책임제한으로 증발하는 것이 오늘날 법원의 평균적인 풍경입니다.
법원은 왜 깎는 것일까요. 판결문들이 드는 사정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건물은 준공된 순간부터 늙기 시작합니다. 균열과 누수 가운데에는 시공 잘못에서 온 것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노화에서 온 것도 있는데, 준공 후 몇 년, 때로는 십 년이 지난 시점의 감정으로는 이 둘을 매끄럽게 갈라내기 어렵습니다. 그 사이 거주자의 사용과 관리가 하자를 키운 부분도 있을 것이고, 보수를 미룬 기간만큼 손상이 번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정들을 항목별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법원은 공평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비율을 정해 뭉뚱그려 조정합니다. 대법원도 하자 발생과 확대에 여러 원인이 섞여 있어 기여분을 가려내기 어려운 경우 이런 방식의 책임제한을 허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준공 후 오래된 건물일수록, 관리 이력이 부실할수록, 입주자들이 하자를 알고도 오래 방치했을수록 비율은 내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 판결문의 문장을 나란히 놓아 보면 이 재량의 폭이 실감이 납니다. 어느 판결은 “손해의 공평한 부담 및 신의칙에 비추어” 배상책임을 하자보수비의 90%로 정했고, 다른 판결은 같은 공평의 원칙을 들어 50%로 제한했습니다. 두 판결 모두 표면적으로는 같은 근거를 쓰고 있지만, 하나는 감정액의 9할을 지켜냈고 하나는 절반을 잃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원칙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아래에 쌓인 개별 사정들, 즉 건물의 나이, 관리의 흔적, 하자의 성격이었습니다.
이 문제가 가장 첨예해지는 무대는 아파트를 비롯한 집합건물 소송입니다. 사용검사를 받고 입주가 시작된 뒤 하자담보책임 기간의 끝자락에서야 소송이 제기되는 일이 많고, 그렇게 되면 감정인은 준공 후 여러 해가 지난 건물 앞에서 시공하자와 자연노후를 가려내야 합니다. 입주자 측이 승소를 확신하고 계산해 온 감정액이 판결에서 2할, 3할씩 얇아지는 경험은 상당 부분 여기서 비롯됩니다. 거꾸로 말하면, 관리사무소의 점검 일지와 보수 이력, 하자 발견 시점의 통지 기록을 평소에 쌓아 온 단지는 이 무대에서 훨씬 유리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책임제한의 싸움은 소송이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서류함 안에서 먼저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주목하실 점은, 책임제한이 법관의 재량이라는 이유로 많은 당사자들이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는 사실입니다. 감정 결과를 두고는 그렇게 치열하게 다투던 대리인들도, 책임제한 단계에 대해서는 의견서 한 장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189건의 분포가 40%에서 90%까지 퍼져 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 사이 어딘가에 내 사건이 놓일 자리를 두고 다툴 공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감정액 3억짜리 사건이라면 70%와 80%의 차이는 3천만 원입니다. 웬만한 단독 사건 하나의 소가에 해당하는 금액이 비율 10%포인트에 걸려 있는 셈이지요.
그 공간에서 실제로 힘을 쓰는 것은 웅변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이기려는 쪽이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배상을 구하는 쪽이라면 준공 후 경과 기간에 비해 관리가 충실했다는 점검·보수 이력, 하자가 노화와는 무관한 시공 결함이라는 감정인의 판단을 기록에 남겨야 비율을 끌어올릴 논거가 섭니다. 배상을 다투는 쪽이라면 반대로 사용상 과실과 방치의 흔적, 내용연수가 지난 부위의 목록이 무기가 되겠지요. 특히 감정 단계에서 손을 쓸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감정신청 항목을 설계할 때 노화나 사용상 과실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항목과 그렇지 않은 항목을 구분해 두고, 감정인에게 사용검사 전 하자와 후발 하자의 구별, 노화 기여분에 대한 의견을 명시적으로 묻는 것입니다. 책임제한은 판결 단계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재료는 감정 단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세 편에 걸쳐 말씀드린 내용을 한 줄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하자소송의 돈은 감정에서 한 번, 항목 다툼에서 한 번, 책임제한에서 또 한 번 깎이며, 세 번의 절삭 모두 그 뿌리는 감정 절차에 닿아 있다. 청구액과 판결 금액 사이의 그 넓은 간격은 운이 아니라 대부분 설계의 산물이라는 것, 그것이 판결문 418건이 제게 가르쳐 준 내용입니다.
저는 이 판결 데이터베이스를 계속 넓히고 있습니다. 책임제한 비율이 건물의 나이, 하자의 공종, 법원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준공 12년 차 아파트, 방수 하자 중심”이라는 조건을 넣으면 예상되는 비율의 범위가 나오는 지경까지 가 보려고 합니다. 재판을 예언하려는 것이 아니라, 소송이라는 긴 항해를 떠나는 분들께 해도(海圖) 한 장을 쥐여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 작업을 이어 가는 공간도 하나 열어 두었습니다. 감정과 하자보수비의 숫자를 계속 다루는 채널, ‘건설분쟁 데이터랩’입니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awchitect/lawyerarchi
건물이 늙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판결은 그 세월에게도 지분을 나눠 줍니다. 다만 세월의 지분이 2할인지 4할인지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정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건물의 나이테와 시공의 흉터를 구별해 읽을 줄 아는 눈이 있어야 만들어집니다. 세월에게 얼마를 떼어 줄지 셈하는 자리에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지, 소송을 시작하기 전에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026.08.15.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