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분쟁] 39년 된 아파트 난간이 무너졌다 — 하자보수 책임은 누구에게
지난 9일 새벽, 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옥상 난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1,100세대가 사는, 올해로 서른아홉 살이 된 아파트였습니다. 길이 20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난간이 안쪽으로 쓰러졌는데, 새벽 시간이라 옥상에 사람이 없어 다치신 분은 없었다고 합니다. 관할 구청은 이틀 뒤 긴급 보수·보강 행정명령을 내렸고, 보도된 이행 기한이 바로 이 글이 올라가는 8월 21일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빗물 침투로 인한 장기 부식을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합니다. 아직 정밀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이것은 아주 전형적인 경로입니다. 콘크리트 표면의 실금이나 방수층의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면 철근이 녹슬기 시작하고, 녹슨 철근은 부피가 커지면서 주변 콘크리트를 안에서부터 밀어냅니다. 그러면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고, 노출된 철근은 더 빨리 녹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 악순환의 끝이 어느 날 새벽의 붕괴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시공사를 떠올리십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 사업주체에게 법이 지우는 하자담보책임에는 기간이 있습니다. 공사 종류별로 짧게는 2년, 건물의 뼈대인 내력구조에 관한 것이라도 10년입니다. 서른아홉 해가 지난 건물이라면 이 기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습니다. 지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문은 사실상 닫혀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책임의 무게중심이 옮겨 갈 뿐입니다.
건물이 나이를 먹을수록 법이 바라보는 상대는 지은 사람에서 관리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관리주체에게 반기마다 안전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고, 건물이 무너지거나 사람이 다칠 우려가 있으면 지방자치단체에 알리고 예방조치를 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옥상 방수며 난간 같은 공용부분은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주기적으로 수선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점검하고,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아 고치는 일. 나이 든 건물에서는 이 세 가지가 법이 관리주체에게 요구하는 기본기입니다.
만약 무너진 난간이 사람이나 차를 덮쳤다면 이야기는 더 무거워집니다. 민법 제758조는 공작물의 설치나 보존에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점유자가, 점유자가 주의를 다했음을 증명하면 소유자가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소유자의 책임은 면책이 인정되지 않는 무거운 책임입니다.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 그리고 구분소유자들이 이 조항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을 법대로 넉넉히 쌓아 둔 단지는 많지 않고, 방수공사 한 번에 억대의 돈이 드는데 충당금 통장에는 그 몇 분의 일밖에 없어 수선을 미루는 단지를 저는 여럿 보았습니다. 그러나 책임의 관점에서 보면 미룬 기록도 기록입니다. 점검에서 지적된 사항을 알고도 방치한 흔적이 남아 있다면 사고 후의 다툼에서 그것만큼 불리한 문서가 없고, 반대로 형편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고쳐 온 기록이 있다면 그것이 관리주체의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됩니다.
그런데 실제 다툼에서 결론을 가르는 것은 법 조항이 아니라 사실의 판별입니다.
같은 부식이라도 원인의 결이 다릅니다. 수명이 다한 방수층을 오래 방치해서 생긴 부식이라면 유지관리의 문제입니다. 반면 근래에 옥상 방수공사나 보수공사를 했는데도 물이 샜다면 그 공사를 한 업체의 시공 하자가 다시 문제될 수 있습니다. 부식이 언제 시작되어 어떤 속도로 진행되었는지, 철근을 덮은 콘크리트 두께가 애초에 충분했는지, 보수 이력이 부식 진행과 어떻게 겹치는지. 이런 것들은 탄산화 깊이와 부식 정도를 재고 도면과 수선 기록을 겹쳐 읽어야 답이 나오는, 감정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감정이 어느 쪽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숫자는 크게 흔들립니다. 제가 살펴본 사건 중에는 같은 집의 하자를 두고 처음 감정에서 971만 원이던 보수비가 재감정을 거치며 4,723만 원이 된 1심 재판도 있었습니다. 책임의 방향과 금액의 크기가 모두 감정 절차 안에서 정해진 것입니다.
사고가 난 뒤의 절차도 결국 같은 길을 지납니다. 긴급 조치와 정밀안전진단으로 원인이 좁혀지면, 그 원인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배상과 구상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관리주체가 먼저 배상하더라도 부실한 보수공사가 원인으로 밝혀지면 그 업체에게 물어낸 돈을 되돌려 달라고 할 수 있고, 반대로 점검과 수선을 게을리한 흔적이 나오면 책임은 관리 쪽에 남습니다. 어느 경우든 출발점은 원인을 가려내는 조사, 즉 감정입니다. 감정 없이 오가는 책임 공방은 목소리 큰 쪽이 이기는 말싸움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 단지는 괜찮은가 궁금해지셨다면, 멀리서 확인할 수 있는 신호들이 있습니다. 옥상 난간과 외벽 상부의 녹물 자국, 콘크리트가 들뜨거나 떨어져 나가 철근이 비치는 자리, 발코니 하부의 흰 석회 흔적 같은 것들입니다. 모두 물과 철근이 만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이런 신호가 보이는데 최근 몇 년간 옥상 방수나 외벽 보수 공사의 기억이 없다면, 관리사무소에 점검 기록부터 확인해 보시는 것이 순서입니다.
노후 아파트에 사는 분들, 그리고 그런 단지를 관리하는 분들께 이 사고가 남기는 숙제는 분명합니다. 관리주체라면 정기 점검과 장기수선계획 이행 기록이 훗날 책임을 다투게 될 때의 방어선이 됩니다. 점검을 했다는 사실만큼이나 그 기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입주민이라면 외벽과 옥상 주변의 균열, 녹물 자국, 콘크리트 떨어짐을 발견했을 때 날짜가 남는 사진으로 관리사무소에 알려 두시기 바랍니다. 그 기록들이 쌓여서, 사고가 난 뒤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건물을 고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건물은 시간을 견디도록 지어지지만, 시간을 이기도록 지어지지는 않습니다. 세월이 건물에 남기는 흔적 가운데 어떤 것은 주름이고 어떤 것은 병입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그 둘을 갈라 읽는 눈이 곁에 있다면, 나이 든 건물과 함께 사는 일이 조금은 덜 불안해질 것입니다.
관련 기사: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0811_0003744133
하자를 언제까지, 누구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 — 공종별 기간과 기산일의 각론은 제가 운영하는 건설분쟁 데이터랩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lawchitect/lawyerarchi
2026.08.21.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