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면 안의 온도
오후 3시 회의를 마치고 경영진 보고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 새 일정관리 프로그램의 붉은 깃발을 내리는 데에만 온 신경이 쏠리곤 합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동료들을 봅니다. 일이 많든 속으로는 울고 있든 간에, 겉으로는 차분하고 단정하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개인적인 사정으로 날이 서 있을 때, 그 억눌린 감정은 엉뚱하게도 가장 가까운 팀원들에게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날아가곤 합니다. 나중에야 스스로 그랬다는 사실을 깨닫고 밀려오는 부끄러움은 결국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인 사고가 가지는 사회적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한들, 우리가 몸담은 ‘회사’ 역시 결국 사람으로 짜인 조직입니다. 감정을 비업무적 요소로 치부해 깊숙한 곳에 치워 두지만, 그 저장 용량은 결코 무한하지 않습니다. 출근길에 들었던 뉴스 한 줄, 부모님과의 통화 중 들은 집안일 한마디가 오늘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합니다. 이렇게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 반드시 비집고 올라오며, 예기치 못한 순간에 팀원들을 향한 감정적 폭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미 날카로운 말들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는 작은 사과의 말 몇 마디로 돌아오는 상처가 아닐 것임을, 또한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팀장이 흔들리면 팀 전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능한 감정을 봉인하고 단단한 갑옷을 입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성이라는 철가면 안에서 나의 온기가 식어가게 놔둔다면, 어느 날 문득 내 안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개인적인 피로와 짜증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억눌린 감정은 엉뚱하게도 가장 가까운 동료나 팀원들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갑니다.
진정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표정으로 감정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된다기보다는 내 마음 속에 감정이 머물고 지나갈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요. 타인에게 날 선 감정을 드러낸 후 대단한 부끄러움을 느낀 저는, 지독히 오만하게도 제가 여전히 ‘사람으로 남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안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저는 얼마나 더 자라야 스스로를 자신있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될까요.
변호사 | 건축사
이 규 황
2026.04.17